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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일기/와인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이 뭉개진 날, 파리의 심판

by 주(酒)간(肝)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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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酒)간일기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릴 주(酒)간지식은 바로, 와인 역사계에 큰 획을 그었던 대 사건. '파리의 심판' 입니다.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와인의 생산지로서 프랑스가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예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기에 그 품질은 항상 보증되어있으며, 지금도 와인 종주국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이런 와인 종주국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와인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무시할 정도로 말이죠. 이런 자존심 강한 프랑스 사람들의 와인 자부심을 한 번에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파리의 심판'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었길래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가 와인 때문에 초상집이 되었는지,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리의 심판


파리의 심판을 먼저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말 그대로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미국과 프랑스를 대상으로한 와인 블라인드 테스팅입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레드, 화이트와인을 모아 눈을 가린채 시음하고, 어떤 와인이 더 훌륭한지 겨뤄보는 것이죠.


 

이 '파리의 심판'이 일어난 이유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가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다가 미국 와인의 품질들이 상당한 것을 보고 프랑스의 와인과 한 번 비교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때 까지만하여도 '스퍼리어'본인 역시 미국 와인이 괜찮다 정도였지, 절대 프랑스 와인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여하튼 당시 프랑스인들의 와인 자부심은 어마무시했습니다. 그 자부심이 어느정도였냐면 같은 와인 종주국인 이탈리아의 높은 품질을 가진 와인을 음주하면서, '프랑스와인이 아닌 것 치고는 나쁘지 않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럼 이탈리아도 그렇게 여기는 프랑스에게 미국은 어떻겠습니까. 좋은 인재와 환경으로 인해 미국 와인의 품질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도, 무시와 웃음거리의 연속이었죠. 때문에 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당연히 압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미국 역시 한 수 배운다는 마음가짐이 더 컸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함께 블라인드 테스팅 당일이 됩니다.


 

1976년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 수 많은 사람이 블라인드 테스팅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이 때 와인 평론가는 총 11명이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이 중 프랑스인이 무려 9명에 달하였으며, 그 곳에서 미국인은 고작 한 명에 불과하였습니다.

 

언뜻보면 불공정해보일 수 있었으나 프랑스 와인의 수준이 높은 만큼 전문가 역시 프랑스인이 많았었고, 때문에 평론가 중 프랑스인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당시 여론을 보면 그 누구도 미국 와인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파판정을 할 생각도 없었으며, 애초에 블라인드 테스트라 그러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모든 와인들과 평론가들의 준비가 끝나고, 블라인드 테스팅은 시작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먼저 시음을 한 후 발표된 화이트 와인의 결과, 놀랍게도 1위를 미국의 와인이 차지하고 맙니다. 심지어 5등 안에 미국의 와인이 프랑스의 와인 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가라앉았습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 대결의 결과에 패배하다니, 호텔 안에 있던 프랑스인들은 형영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드와인 시음, 프랑스인들은 이전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조금이라도 프랑스와인으로 추정되면 좀 더 후하게 점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레드와인의 결과.


 

화이트와인에 비하여 더 나은 결과였지만, 그것이 절대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레드와인 테스팅 결과 역시 미국와인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1위인 미국와인과 2위인 프랑스 와인의 가격차는 3배가 넘는 상태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블라인드 테스팅의 결과. 이는 그곳에 있는 모든 평론가들이 믿을 수 없는 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사건은 프랑스 와인사에 있어서 치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이 심사위원들 중 한 명이었던 '오데트 칸(와인잡지 편집자)'의 경우 자신의 투표한 쪽지를 빼앗으려 하였으며, 이후 잡지에 시음순서가 프랑스와인에게 불리하게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였습니다. 물론 시음 순서는 즉석에서 제비뽑기를 통했기에, 그러기는 힘들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하튼 이 사건으로 프랑스는 초상집이 되어버립니다. 와인제조 경력도 한참 밀리는 풋내기한테 와인으로 졌다. 프랑스인들은 믿기 힘들었으나 이미 술은 엎질러진 상황, 언론들은 최대한 축소하여 사건을 보도하였지만 그것이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켜주진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 하였으며, 그 중에서 이탈리아는 특히나 이 상황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평소 자신들의 와인을 프랑스가 많이 무시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프랑스의 와인은 한 순간에 곤두박질 치게 됩니다. 와인의 명성, 자부심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떨어지는 기분이었죠. 그리고, 프랑스는 파리의 심판 이후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여담으로, 2006년 캘리포니아는 파리의 심판 사건을 캘리포니아의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공표하였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그 때의 사건을 기리기 위해 레드, 화이트와인의 1위였던 Stag's Leap와 Chateau Montelena를 한 병씩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선 아직까지도 치욕의 날로 남아있는 파리의 심판. 이후 프랑스는 몇 번의 블라인드 테스팅을 더 거치지만, 이전처럼 압도적인 등수를 보여준 순간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아주 예전이야 프랑스가 와인으로 압도 할 수 있었으나, 지금 와선 좋은 환경과 인재만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파리의 심판,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이 사건은 와인으로서도 그렇지만, 사람으로서도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읽었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저는 다음에 또 다른 지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주(酒)간지식, '파리의 심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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